[서울=뉴스핌] 박준호 기자 = 한·일 롯데의 분리 경영을 골자로 하는 화해안을 제시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속내는 명확하다. 한국 롯데는 깨끗이 포기하고 일본 롯데만이라도 경영권을 회복하려는 것.
이를 위해 자신이 보유한 광윤사 지분을 활용해, 한국 롯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배 고리를 끊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당근책을 제시했다. 백척간두에 선 신 전 부회장이 꺼내든 사실상 마지막 카드다.
◆ "일본 롯데홀딩스 지배 고리 끊어주겠다"?
화해안 시나리오만 놓고 보면 한국 롯데그룹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다. 지주사 체제 전환에도 불구하고 호텔롯데를 매개로 한 일본 롯데의 지배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일본과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어서다.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도 불안정한 지배 기반을 굳건히 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롯데그룹 측은 “진정성 자체가 의심된다”며 화해안을 강하게 일축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다 검토할 가치조차 없는 여론몰이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신 전 부회장의 화해안이 의결권 행사의 캐스팅보트를 쥔 ‘종업원지주회’를 끌어올 뚜렷한 방책을 제시하지 못해서다.
신동빈 회장의 롯데홀딩스 의결권 지분은 4.47%에 불과하지만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롯데홀딩스 사장을 비롯한 ‘친(親) 신동빈’ 세력으로 분류되는 일본 경영진의 지지를 토대로 한·일 롯데를 통합 경영하고 있다. 여기에 불안 요소는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現 SDJ코퍼레이션 회장) [사진=뉴스핌] |
롯데홀딩스의 의결권은 신 전 부회장(광윤사 포함) 측이 33.31%를 가지며, 종업원지주회(31.06%)와 임원지주회(6.67%) 등 일본 주주들이 53.33%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과반이 넘는 의결권을 확보한 일본 임직원 세력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롯데홀딩스와 그의 자회사 군(群)인 L투자회사들이 한국 롯데의 지배구조 상단에 있는 호텔롯데의 지분 97% 이상을 보유한 상황에서, 이들이 돌아서면 신 회장의 지배력도 위협받을 수 있다. 신 전 부회장도 이 틈새를 마지막 기회로 삼았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의 의결권제한주식 제도를 활용해 한국과 일본 롯데의 경영권을 독립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일본 회사법 제108조에 따르면 주주총회 참석주주 3분의 2 이상의 의결권으로 결의하면 정관의 변경을 통해 일부 주주의 주식을 의결권이 없는 주식으로 변경할 수 있다. 롯데홀딩스의 의결권을 광윤사에게만 부여하고,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LSI) 의결권을 신동빈 회장에게만 부여해 일본 경영진의 지배력을 원천 봉쇄한다는 계산이다.
이 경우 호텔롯데를 매개로 한 일본롯데홀딩스의 간접 지배력도 사라진다. 일본 롯데의 지배구조는 롯데홀딩스→ LSI→ L투자회사→ 호텔롯데로 이어진다. 호텔롯데는 롯데홀딩스(19.07%)를 비롯해 일본 L1~12투자회사가 72.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신 회장이 LSI 의결권을 지배할 수 있으면 호텔롯데에 대한 일본 롯데의 간섭을 끊을 수 있다. LSI가 L투자회사들의 지분을 100% 보유한 모회사 격이기 때문이다.
◆ 신동빈 지지해 온 종업원지주회가 맹점
그러나 이 같은 신 전 부회장의 제안에는 큰 맹점이 있다. 의결권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일본 주주의 추가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오너가 양 측의 우호지분을 합친다 해도 의결권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제안이 현실성을 갖추려면 전제조건이 필요한 셈이다.
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일본롯데홀딩스 2대 주주인 종업원지주회(31.06%)다. 10년 이상 근무한 과장급 이상 직원 130여명으로 구성된 종업원지주회는 신 회장의 우호세력이자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종업원지주회는 개별적으로 의결권으로 행사하지 않고 대표자 1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독특한 구조다. 현재 롯데 긴자코지코너의 오구치 코스케(小口幸介) 이사장이 종업원지주회 대표를 맡고 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사진=뉴스핌] |
문제는 종업원지주회가 신 전 부회장이 제시한 시나리오에 동의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종업원지주회는 과거 경영권 분쟁 당시에도 신동빈 회장의 편에 서며 신 전 부회장을 축출했고, 의결권을 쥐고 있는 코스케 이사장은 신 회장의 우호세력으로 낙점됐다. 지난 다섯 번의 형제간 표 대결에서도 변함없이 신 회장을 지지하며 힘을 실어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 전 부회장 측은 종업원지주회의 지지를 이끌어 낼 뚜렷한 묘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양 측의 합의만 이뤄진다면 일본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한 상태다.
신동주 측 변호인은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이 합의를 하는 것을 전제로 그 후에는 일본 경영진과 주주들의 이해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종업원지주회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만든 단체로 두 아들(동주·동빈)이 협의만 한다면 같은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본 주주들이 자신들의 의결권 제한을 동의하겠느냐는 질문엔 “일본롯데홀딩스는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현 시점의 주주는 14명뿐이다. 따라서 화해안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얻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며 “한국 롯데그룹에 대한 의결권은 제한되지만 의결권 이외의 주주로서의 권리는 남기 때문에 경제적인 손실은 발생하지 않으므로 이해를 얻기 쉬울 것”이라고 답했다.
◆ 롯데그룹 "국면전환 위한 꼼수에 불과"
그러나 업계에서는 지금까지의 행보를 고려하면 일본 주주들이 신 전 부회장의 제안을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도 경영권 분쟁의 키를 쥐고 있는 종업원지주회를 상대로 공세와 회유를 반복하며 경영권 탈취를 시도해왔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2016년에는 종업원지주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1인당 2억5000만엔의 롯데홀딩스 주식을 배분하겠다는 회유책을 제시했다가 통하지 않자, 이사장 1인이 단독으로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하는 의결권 구조를 문제 삼으며 공세를 취한 바 있다.
무엇보다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는 이미 일본 경영진과 주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지배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굳이 신 전 부회장과 손잡고 자신의 지지 세력인 일본 주주와 척지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뉴롯데’의 경영 투명화를 내세운 만큼 모양새도 좋지 않다.
롯데그룹 측은 이처럼 신 전 부회장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희박한 화해안을 들고 나온 것 자체가 국면전환을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본인의 호텔롯데 이사해임 불복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하는 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화해 시도 자체를 홍보용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며 “이미 일본 주주뿐 아니라 법원에서도 신 전 부회장의 경영능력이 부적격하고 해임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