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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영웅'...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걸어온 길

기사등록 : 2019-02-0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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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복동 할머니 지난달 28일 영면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폭로 후 줄곧 평화 활동
1일 오전 시민장...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영결식 열려
일본 총리 관저 앞 등 세계 각지에서도 추모 열기 이어져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만 14세 되던 해 전쟁터로 끌려갔다. 일본의 중국 침략이 한창이던 1940년이었다. 중국은 물론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끌려 다녔다.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가 됐다. 전쟁이 끝난 후엔 미군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고향인 경남 양산에는 강제 출가 8년째 되던 해인 1947년에 돌아왔다. 군 위안소에는 수많은 10대 소녀들이 잡혀 있었다.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하거나 피해 사실을 숨기고 익명으로 살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는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 그만큼 활동량이 많았다. 과거를 딛고 ‘여성인권 운동가’, ‘평화 활동가’로 활동했다. 길거리와 미디어, 때로는 국제무대에 서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증언했다. 수많은 피해자들 맨 앞줄에서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했다. 병상에 들기 전까진 매주 수요일이면 집회에 참석해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호소했다.

김 할머니가 지난달 28일 오후 10시41분쯤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그토록 바랐던 일본의 사죄는 후세의 몫으로 남았다. 김 할머니는 지난 1992년 3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치욕스런 과거는 귀향 45년 만에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서울=뉴스핌]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8.09.03 /뉴스핌DB

이후 공개증언을 이어갔다. 같은 해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해 피해 사실을 알렸다. 이듬해인 1993년 6월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일본군의 반인륜적 행위를 전 세계에 폭로했다.

2000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유죄를 이끌어냈다. 전시 성노예로 여성을 강제동원한 일본의 전쟁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열린 국제민간법정이다. 피고로 기소된 히로히토 일황과 옛 일본군 간부 등에 대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일본 천황과 정부는 군 위안부와 관련해 최초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 할머니의 활동은 최근 10년 새에도 활발했다. 지난 2010년 3월 8일,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2012~2016년에는 유엔인권이사회·미국·영국·독일·노르웨이·일본 등 매년 수차례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해 활동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해 국경없는기자회(AFP)는 2015년 김 할머니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했다.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시상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행렬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구 일본대사관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9.02.01 leehs@newspim.com

 

2017년에는 정의기억재단에서 여성인권상을 수상, 상금 5만원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한 ‘김복동 평화상’ 제정을 위해 내놓았다. 이 밖에도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 재일조선고교 학생 장학금, 포항지진 피해자 지원 등을 위해 수천만원을 쾌척했다.

김 할머니는 용기 있는 폭로 이후 평화운동을 이끌며 시민들의 ‘영웅’으로 불렸다. 할머니의 장례는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발인식이 열린 1일 오전, 시청광장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행진이 운구 차량과 함께 영결식이 열리는 일본 대사관 앞까지 1.3km가량 느리게 전진했다. ‘우리의 영웅 김복동!’,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만장(깃발)이 함께였다.

김 할머니의 유해는 화장 후 충남 천안시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하관식은 이날 오후 5시로 예정됐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한 참석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02.01 leehs@newspim.com

한편 김 할머니의 외침이 전해졌던 국내외 곳곳에서는 추모제와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정의기억연대는 미국·일본·네덜란드·호주·뉴질랜드·아르헨티나·콩도 등에서 추모 서한을 전달하고 분향소를 설치하는 등 추모 행동이 있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서울·성남·수원·용인·강릉·횡성·서산·당진·양산·창원·거제·담양·여수 등에서 추모 열기가 뜨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사죄를 거부한 일본 아베 총리 관저 앞에서도 추모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성차별철폐부회는 김 할머니 발인이 진행되는 1일 낮 12시와 오후 6시 두 차례에 걸쳐 일본 도쿄도 아베 총리 관저 앞에서 김복동 할머니 추모회를 연다.

 

zunii@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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