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1분만에 식은 땀이 흘렀다. 휠체어 체험 코스는 첫 번째 경사로부터 이동이 쉽지 않았다. 두 팔로 바퀴를 굴려야하는 휠체어는 10㎝ 높이에 요철을 넘는것조차 힘겨웠다. 특히 중간에 설치된 틈새에 바퀴가 걸리자 아무리 힘을 줘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름 힘 하나는 아직 자신있었다고 생각했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두 번째 경사로에서 마주한 15㎝ 요철은 상체를 앞으로 구부려 반동을 줘야 간신히 넘을 수 있었다. 안내요원은 일반인들을 위해 비교적 무난하게 마련된 체험코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만약 계단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말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눈을 가리고 시작한 시각장애 코스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심’이 발걸음을 막았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공포를 자아낼 줄 몰랐다. 무심히 도로를 지나며 수만번은 밟았을 점자블록이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시각장애 체험을 해보는 마당에 발로 점자 모양을 감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서울시청 시민청에 마련된 휠체어 체험코스. 중간에 설치된 틈새에 바퀴가 걸리자 휠체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현재 장애인들의 보행편의를 위한 보도블럭 전수조사를 계획중이다. [사진=정광연 기자] |
지난 23일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 휠체어장애와 시각장애, 청각장애, 뇌병변(편마비) 장애 등 5가지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서울시는 4월초부터 장애인편의시설 인식개선 체험행사 ‘희망나루’를 진행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장애인은 258만명에 달한다. 정부와 지자체들의 장애인 정책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이들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이해하는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기자가 안내요원의 도움을 받으며 시각장애 코스를 체험하는 모습. 불과 3미터 불과한 거리였지만 눈을 가리고 걷자 1분만에 식은땀이 흘렀다. [사진=정광연 기자] |
시각장애 코스에서 안내요원 도움을 받으며 간신히 체험코스를 끝내고 안대를 벗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3미터.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온 거리는 불과 3미터도 넘지 못했다. 눈을 가리지 않았으면 대여섯발걸음도 되지 않을 거리다. 실제 거리였다면 도로밖으로 이동하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을거라는 말이 가슴 한편에 무겁게 남았다.
소리도 자막도 없이, 영상에 나오는 사람의 입모양만 보고 내용을 추측하는 청각장애 체험장에는 큰아버지가 청각장애인이라는 대학생 최모군이 앉아 있었다. 뉴스 아나운서의 입모양을 보고 단 한 글자로 맞추고 못한 그는 “가족 중 한명이 장애인이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체험에서 선택한 동영상은 영화 ‘변호인’. 10번도 넘게 본 영화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검찰 측 반대신문 없습니까”라는 대사를 입모양만 보고 추측한 문장은 “김 검사, 내방으로 와”였다. 장애인들이 겪는 일상속 불편함은 체험 내내 예상을 벗어나는 영역에 있었다.
저주파 치료기 자극으로 뇌병변(편마비) 장애인의 불편함을 체험하는 모습. 근육 떨림으로 인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나무블럭을 쓰러뜨리지 않고 옮기는 건 불가능했다. [사진=정광연 기자] |
현장에서 만난 지체장애인편의시설서울지원센터의 고은정 주임은 “우리가 곁에서 예상하는 장애인들의 불편함은 사실 상상 이상이다"며 "뜨거운 국을 먹는 아주 평범함 행동이 손이 떨려서 숟가락을 제대로 쥘 수 없는 뇌병변 장애인들에게는 화상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체험 프로그램은 그들의 불편함을 직접 느끼고 그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의 필요성을 우리 모두 공감하자는 취지”라며 “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는 영등포구(5월, 영등포구청), 은평구(5월, 상신초등학교), 동작구(6월, 총신대), 서대문구(6월, 명지대), 송파구(10월, 올림픽공원), 광진구(11월, 광진구청) 등 연말까지 희망나루 행사를 시내 곳곳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