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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자의 고백㉞] 열여덟 살, 마약으로 그녀를 잃었다

기사등록 :2019-06-16 05:00

가출해 쪽방촌으로 숨어든 소년..동갑내기 소녀 만나 마약에 빠져
우울증 겪던 소녀, 결국 극단적 선택.."18살, 너무도 어린 나이"
다시 찾은 쪽방촌 .."10년 지나서야 너를 가슴에 묻는"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윤혜원기자 = 10년 전, 김성수(가명)씨는 어머니의 지갑에서 5만원을 훔쳐 집을 나갔다. 지겹도록 싸우던 부모님, 숨 막히게 답답했던 학교, 김 씨는 가출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며칠이나 길거리를 배회했다. 결국 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십개의 방이 붙어 있던 쪽방촌에 숨어들었다.

화장실 수도꼭지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옆집 사람의 기침 소리, 발자국 소리까지 들리던 쪽방, 김 씨는 이곳에서 동갑내기 희영(가명)을 만났다. 바로 옆방에 살던 희영은 친구와 함께 3개월 전쯤 집을 나왔다고 했다. 둘은 금방 친구가 됐고 서로 방을 오가며 자주 이야기도 나눴다. 어쩌다 돈이라도 생기면 라면을 사 나눠 먹고는 했다.

김 씨가 희영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한 건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희영의 방에는 수상한 물건들이 굴러다니고는 했는데, 김씨는 그것이 마약을 하는 도구라고 짐작했다. 희영이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수척한 몰골로 나타나는 경우도 더러 봤다. 하지만 이 사실이 외롭던 김 씨에게 친구를 외면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얼마 뒤 김 씨와 정화는 방 하나를 빼고, 같은 방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런데 희영은 기다렸다는 듯 김 씨 앞에서 마약을 하기 시작했다. 희영은 무엇이 좋은지 실실 웃다가 갑자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 이어졌다.

김 씨는 그런 희영이 무서워 몇 번이나 말리고 마약을 숨겨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마약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뛰어넘었고, 희영은 급기야 김 씨에게도 마약을 권유했다. 희영은 “내가 그래도 너 친구인데 나쁜 거 하라고 하겠냐”며 마약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망설이던 김 씨는 결국 희영이 알려준 대로 마약을 투약했다.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막막함, 앞날에 대한 두려움, 김 씨는 마약이 이를 다 잊게 해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환각이고 착각이었다.

마약에 빠진 김 씨의 삶은 조금씩 추락하고 있었다. 돈이 생기면 마약을 사는데 쓰던 김 씨와 희영은 가끔 찾아오던 친구들이 주던 푼돈으로 연명했다. 밥 대신 마약을 사는 날이 더 많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둘은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몸무게는 10㎏ 이상 빠졌다.

김 씨와 희영은 친구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돈이 궁해 길거리로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중년의 아저씨나 학생에게 닥치는대로 돈을 구걸했다. 비참한 삶이었지만 둘은 마약을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직 청소년이었던 이들에게 마약의 부작용은 더 빠르게 나타났다. 조울증 증세가 시작됐고 이를 잊기 위해 다시 마약에 손대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마약으로 하루를 시작해 마약으로 잠들던 이들의 삶은 더는 행복하지 않았다.

희영은 김 씨가 잠든 사이 마약에 취해 깨진 유리병으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김 씨는 희영을 응급실로 데려갔다. 하지만 출혈이 심했던 희영은 18살 어린 나이에 건널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경남 창녕군 국립부곡병원 내 약물진료소로 향하는 계단 [사진=임성봉 기자]

김 씨는 이 일을 계기로 어머니의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1년 동안의 가출은 그렇게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김 씨는 집에 돌아온 후 극심한 금단증상에 몸부림쳤다. 어머니는 직장마저 그만두고 김 씨를 돌봤다. 오랫동안 치료를 받은 끝에 김 씨는 다행히도 단약에 성공했다.

그 뒤로 10년이 지난 어느 날 김 씨는 희영이 있던 쪽방촌을 다시 찾았다.

쓸쓸하고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 서로에게 전부였고 친구이자 동료였던 희영을 김 씨는 그리워했다. 두통과 우울증이 찾아올 때면 김 씨는 희영을 생각했다. 유독 하얗고 곱던 피부, 검고 큰 눈동자가 선해 보였던 희영. 김 씨는 10년이 지나서야 희영을 가슴에 묻을 수 있었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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