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백지현 기자 = 한국은행과 정부가 회사채 매입기구 설치를 두고 눈치싸움에 돌입했다. 한은이 회사채를 매입하려면 정부 신용보강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공을 넘겼지만, 기획재정부는 아직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양측 모두 위험자산인 회사채를 직접 인수할 경우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13일 한은 고위 관계자는 "회사채 매입 기구를 설립하려면 정부 보증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은이 먼저 검토 여부를 얘기하기 곤란하다"며 "한은이 해야할 건 한은이 해야하지만 정부가 할건 정부가 해야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인턴기자 = 서울 중구 한국은행. 2019.03.29 alwaysame@newspim.com |
그간 한은은 현행법상 회사채 직접 매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법은 한은이 발권력을 무한정 쓰는 것을 제한해둔 장치로 한은법에 직접 명시된 채권만 매입할 수 있다"면서 "영리기업 여신 조항(한은법 80조)을 회사채 매입까지 확대 해석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방식 처럼 정부 보증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입장도 동시에 표해왔다. 정부가 출자나 신용보증을 통해 특별법인(SPV)을 세운 다음, 중앙은행은 SPV가 매입한 회사채를 담보로 잡고 SPV에 대출해주는 형식이다. 한은법 75조, 76조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국채나 원리금 상환에 대하여 정부가 보증한 채권을 직접 인수할 수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협의해서 정부의 신용보강을 통해서 시장 안정에 대처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뜻을 표했다.
반면, 기재부는 아직까지 회사채 매입 기구과 관련한 코멘트를 자제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회사채 매입기구 설립에 대해 아직 공식적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기재부 입장에선 회사채 상환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선뜻 나설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직접 보증을 서지 않고 신용보증기금을 이용하더라도 결국 정부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비상상황 속 기재부와 한은간 협업이 조속히 이뤄져야한다고 조언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상상황으로 흑자나는 기업도 회사채 발행을 못해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선 살리고 나서 구조조정을 해도 늦지않다"며 회사채 매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국회에서 한은법을 고치더라도 현재 한은이 회사채 직접매입은 못하기 때문에 기재부와 협의를 거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수익이 발생하거나 정부재정 공적 자금 투입했다가 회수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금통위원들이 책임을 져야 할 수 있기 때문에 한은으로써는 안전장치를 두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한은이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재부와 한은이 서로 지혜롭고 융통성 있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보증없이 한은이 회사채를 매입하기 위해선 한은법을 아예 고치는 방안도 고려된다. 한은 내부에서도 재빠른 위기대응을 위해선 구체적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보증 등을 법에 반영해놓으면 위기대응 상황에서 손실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수단을 갖출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 개정엔 최소 1~2달이 소요될 전망이다. 손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주열 총재가 지난 금통위에서 우회적으로 회사채 매입을 내놓은 상태에서 당장은 한은법 개정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차후의 위기 상황을 위해 한은법 정비를 해보자는 선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lovus2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