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먼저 진입한 차량에 보행자가 갑자기 건너다 사고가 난 경우라도 운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혐의로 기소된 권모 씨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했다"고 18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대법은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입법취지는 운전자의 주의 의무를 강화해 횡단보도를 통행하는 보행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데 있다"며 "이러한 법리는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있을 경우 모든 차의 운전자는 먼저 진입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차를 일시정지하는 등 조치를 취함으로써 보행자의 통행이 방해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은 "이를 위반해 죄를 범한 때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보행의무를 위반해 운전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보험 또는 공제 가입 여부나 처벌에 관한 피해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법원에 따르면 택시 운전기사인 권 씨는 지난 2019년 4월 4일 오후 8시45분경 서울 송파구 중대로9길 54 앞 도로에서 오금동 방향으로 우회전하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피해자를 들이받아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를 받았다.
당시 권 씨는 피해자가 도로를 건너기 시작하기 전 횡단보도에 먼저 진입했었고, 길가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았다.
또 당시 권 씨의 택시는 택시공제조합에 가입돼 있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교통사고를 일으킨 차가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된 경우 업무상 과실치상 등 죄를 범한 운전자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다만 특례법 제3조 제2항은 여러 단서 조항을 두면서 이에 해당하는 경우 예외로 규정했다. 권 씨의 경우는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에 따른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됐다.
1심은 사고 현장 횡단보도에 신호기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먼저 도달하지도 않은 이 사건의 경우까지 진입 선후를 불문하고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보호 의무'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공소를 기각했다.
반면 2심은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아 언제든 보행자가 횡단할 수 있는 곳이고,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량으로 횡단보도 진입부에 보행자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피고인은 이를 먼저 확인하거나 발견 즉시 정지할 수 있도록 속도를 더욱 줄였어야 한다"며 1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은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권 씨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