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요즘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법무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한 장관의 정치 활동 참여 여부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이민정책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자의든 타의든 한 장관은 정치의 길로 들어설 것이고, 이민정책은 내년 총선에서 논란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연장선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한 장관의 이민정책을 되돌아보면서 그 공과를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법무부는 규제와 법질서 확립이 조직의 DNA이기 때문에 역대 법무부 장관은 이민을 공론화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그런데 한 장관은 취임 시부터 이민정책과 이민청을 공언하고 나왔으니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이후 국회 대정부 질문과 국정감사 그리고 강연과 현장 방문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구재앙에 대응하는 이민정책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그 중에도 백미는 지난 7월 제주강연이었다. 미래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이민정책의 활용 수준이 아닌 농지개혁에 버금가는 이민개혁을 해야 하고 본인의 모든 역량을 다할 것을 선언했다. 총선이나 대선급 이슈로 다룰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여당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해서 이민청 설치에 대한 구상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김도균 교수. |
역대 정부에서도 각 부처에 산재 된 이민정책 관련 위원회의 통합과 컨트롤타워 설치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매번 부처 간 장벽을 넘지 못하고 정치권이나 여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실세 장관이 세계적 수준의 이민정책과 이민청 설치를 추진해 나간다고 하니 언론과 국민적 관심이 한껏 올라갔다.
인구역사 최악의 초저출산과 지방이 소멸해 가는 작금의 인구 대위기를 생각하면, 한 장관의 미래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에 대한 인식과 이민정책의 활용안에 대해서는 백 퍼센트 공감하고 이러한 시도는 역사의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이러한 장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이민정책 현장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숙련인력 비자인 E-7-4의 쿼터를 획기적으로 늘린 것인데, 이는 이민정책에서 굉장히 위험한 시도다. 이런 방식으로 이민수용을 확대한다면 유럽 등 이민 선진국의 실패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전문인력과 숙련인력과 달리 고용허가제 대상인 비전문인력(E-9)은 일정 기간 취업 후 돌려보낼 것을 전제로 특정 국가와 계약을 맺고 데려온 단기순환 형태의 근로자들이다. 이민자로 수용하거나 정주형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적과 나이, 학력, 가족관계 등에 기반하여 미래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자질을 갖춘 자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 기본인데, 당장 산업현장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검증이 되지 않았거나 자질이 부족한 단기 근로자와 그 가족까지 대규모로 이민을 받으면 향후 우리 사회의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민정책에서 고용허가제 근로자보다 먼저 우대하고 유치해야 할 대상은 외국인 유학생인데,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법무부는 지난 8월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유학생 취업을 전면적으로 허용한다고 발표했는데,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다.
직업훈련기관의 연수생도 이미 지난 2월에 취업을 확대한다고 발표하고 감감무소식이다. 장관은 우수 인재 유치와 세계적 수준의 이민정책을 외치는데, 담당 부서에서는 정책을 발표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인재 유치와 체류 외국인에 대한 행정지원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실례로 유학생 비자발급에 사회통합 평가 점수를 반영한다는데 해외에 단 한 곳도 평가기관을 설치하지 않았고, 한국어 능력을 비자변경 조건으로 했는데 한국어 학습과 평가시스템도 미비한 상태다. 또한, 단순 비자 연장에 3개월, 투자자 초청에 6개월, 영주권에 1년, 국적취득에 2년이 걸릴 정도로 행정 시스템 개선이 시급함에도 인력 부족 탓만 하고 있다. 대신 지방의 출입국 관서는 체류질서와 불법체류자 단속에 방점을 두니 급기야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을 납치하여 강제 출국시키는 참담한 일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정책의 사각지대는 장관의 의지와 달리 손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 내부 인사가 중심에 있다. 법무부 내 이민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부서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임기가 다한 본부장이 정책은 뒷전에 두고 자리에만 연연하다가 김학의 전 차관 출국 금지 사태로 불명예 퇴진하였는데, 이번에도 임기가 지난 본부장을 그대로 유임시켜 정책을 지휘하니 제대로 영이 서지 않고 손발이 맞지 않는 것이다.
농지개혁이 성공한 배경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조봉암 농림부 장관을 발탁하여 전권을 주었기에 가능했다. 이미 임기가 지나고 자리에 연연하는 지휘관에게 개혁을 추진하라고 한다면 일선 직원들은 모두 복지안동(伏地眼動) 하면서 장관의 눈치만 쳐다보게 된다. 제대로 된 인사에서 제대로 된 정책이 시작된다.
이제 한동훈 장관은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세계적 수준의 이민정책을 펼치고 전담조직을 만들기가 어렵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다. 후임 법무부 장관은 한동훈 장관의 이민정책 공과를 잘 살펴 공(功)은 그대로 발전시키고 과(過)는 과감히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 미래 생존전략으로 이민정책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도균 교수는 법무부 이민정보과장, 출입국심사과장, 주칭다오총영사관과 주중국대사관 영사,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장, 한국이민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출입국과 이민정책 이슈를 다뤄왔다. 현재 제주한라대학 특임교수, 행정사법인 한국이민 대표 행정사, 법무법인 동인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