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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김성수 기자]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는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정부의 경제정책)의 '돌격대'로 불린다.
일본은행이 현재 실시하고 있는 대규모 양적완화는 통화량을 늘려 '경기회복'과 '물가상승'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아베노믹스 정책의 뼈대를 이룬다.
구로다 총재가 취임 후 양적·질적 금융완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일본 경제는 반짝 회복되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예상치 못한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물가상승세가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탈출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취임 3주년을 맞은 구로다 총재에 대한 평가도 엇갈릴 전망이다.
◆ 구로다 하루히코는 누구?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도쿄대 법대를 나와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재무성에서 국제금융차관 등을 역임했고, 일본은행 총재 취임 직전까지는 2005년부터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지냈다.
구로다 총재는 일본 재무성 주세국에서 디플레이션에 따른 세수 감소로 고전한 경험이 있으며, 국제국에서는 엔고(高)에 맞선 적도 있었다. 일본의 2% 물가상승률 목표와 엔화 약세를 밀어붙일 아베노믹스의 선봉장으로 구로다가 낙점된 것은 이러한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구로다 총재는 재무관 시절부터 일본은행의 통화완화 정책 속도가 느리다고 비판해왔다. 일본은행은 장기국채·자산담보부증권(ABS)·주식 등 경기부양을 위해 매입할 자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소극적 대응에만 그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구로다의 이러한 '디플레이션 파이터'적 면모는 당시 신임 총리였던 아베 신조의 러브콜을 받았다. 아베 총리는 임기가 보름 가량 남아 있던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를 서둘러 퇴임시키고 대신 구로다를 총재 자리에 앉혔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총재가 아베 정부의 대규모 양적완화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자신과 '코드가 맞는' 구로다로 경질해 버린 것이다.
아베 총리가 구로다를 선택한 배경에는 '통화외교'도 작용했다. 일본이 달러당 100엔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네트워크와 소통 능력을 갖춘 인사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신임 총재의 자질로는 서구와 한국·중국에서 '엔저 공격'에 대한 불만이 속출할 때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인맥과 영어구사 능력이 중시됐다"고 전했다.
국제금융 전문가인 도시마 이쓰오 도시마이쓰오사무소 대표는 "아베 총리는 구로다가 유창한 영어로 주요국 통화 당국자 및 외국 언론을 설득해 달러당 100엔을 실현할 적임자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구로다는 일본은행 총재로 취임을 앞둔 2013년 중의원(하원) 인사청문회에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앞서 했던 유명한 연설 "Whatever it takes(어떤 방법이든 동원하겠다)"의 일본 버전을 연출하기도 했다.
구로다는 청문회에서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며 "(총재로) 임명된다면 최대한 빨리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드라기 총재도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시장을 크게 안정시켜 '수퍼 마리오'란 별칭을 얻었다.
구로다는 아베 총리가 취임한 지 넉달 만인 2013년 3월20일 일본은행 총재로 취임했다. 곧이어 2013년 4월4일 양적·질적 금융완화 정책이 대대적으로 실시되면서 아베노믹스의 화려한 막도 올랐다.
일본은행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목표 2% 달성을 위해 1년간 60∼70조엔의 자산 매입을 진행하다가 지난해 10월 말에는 연간 매입자산을 총 80조엔으로 확대하는 추가 부양책을 단행했다.
그 결과 일본의 본원통화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275조8800억엔(약 2515조1428억원)으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본원통화는 일본은행이 시중에 공급하는 유동성을 뜻한다. 이는 엔화 약세와 자산가치 상승이라는 연쇄적 효과를 가져왔다.
달러/엔 환율은 지난 2년간 93엔에서 120엔 수준까지 뛰었다(엔화 약세). 같은 기간 닛케이지수는 약 60% 가량 급등해 2000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기업들은 엔화 약세의 최대 수혜자였다. 지난해 일본 기업들의 경상이익은 65조엔(약 593조5690억원)으로 집계되면서 7년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산가격 상승은 일본 가계에도 혜택을 가져왔다. 일본 가계의 주식·투자신탁 보유액은 약 50조엔(약 456조5900억원) 증가하면서 전체 200조엔에 이르렀다. 자산 가치가 오르면서 소비도 따라 증가했다. 제일생명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개인소비는 지난 1년간 주가 상승으로 인해 2조3000억엔(약 21조31억원) 늘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1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열린 IMFC 회의(Plenary)에 참석, 회의 시작에 앞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
일본은행이 올해 양적완화 시행 2주년을 맞은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구로다 총재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일본에서 활동하는 이코노미스트 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로다에게 A나 B를 준 응답자는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아베 총리가 응답자의 약 절반으로부터 C를 받은 것에 비하면 훨씬 높은 점수다.
전문가들은 양적완화 자체는 일본 경기부양에 충분치 못했지만, 구로다 총재로서는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다니엘 카프 BBVA리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은 양적완화 실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며 "여기에 다른 구조적 조치도 더해져야 했지만 이는 구로다의 권한 밖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은행의 디플레이션 타개 시도가 성과를 거뒀는가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부정적이었다. 이코노미스트 중 3분의 2는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달성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진행된 조사에서 해당 의견이 '3분의 1'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일본 경제전망이 한층 비관적으로 바뀐 셈이다.
일본은 예상치 못한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지난해에 인플레이션이 다시 하락세를 보였다. 소비세율 인상 효과를 제외하면 지난 2월 물가상승률은 전년동기 대비 거의 변동이 없었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