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영태 기자]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동맹국인 중국이 대북제재와 압박으로 양국관계의 '붉은 선'(레드라인)을 넘어서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비난하고 북중관계와 핵을 맞바꾸지 않겠다는 입장도 명확히 밝혔다.
북한은 김일성 전 주석 생일(태양절) 105주년인 지난달 15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처음 공개했다.<사진=조선중앙TV 갈무리/뉴시스> |
통신은 3일 '김철'이라는 개인 명의로 게재한 '조중(북중)관계의 기둥을 찍어버리는 무모한 언행을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평에서 "조중관계 악화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적으로 전가하고 미국의 장단에 놀아대는 비열한 행위에 대해 구구하게 변명해 나섰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북한의 중국 비난은 지난달 7일 미중정상회담 등을 통해 강력한 대북 영향력 행사를 요구받은 중국 정부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중단한 데 이어 추가 대북 제재를 시사하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报)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까지 거론한 데 대한 반발로 분석된다.
통신은 논평에서 북중 간의 레드라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의 존엄과 이익,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북한에게) 핵은 존엄과 힘의 절대적 상징이며 최고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미국이 외치는 '국제사회의 일치한 견해'라는 것을 그대로 따라 외우며 반공화국 적대세력과 한편이 되어 우리를 범죄자로 몰아대고 잔혹한 제재놀음에 매달리는 것은 조중관계의 근본을 부정하고 친선의 숭고한 전통을 말살하려는 용납 못할 망동"이라고 반발했다.
아울러 "우리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강도 높은 경제제재는 물론 군사적 개입까지도 불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저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리 조선의 전략적 이익은 물론 존엄과 생존권까지도 마땅히 희생되어야 한다는 극히 오만한 대국주의적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가 누구이든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우리의 핵 보유노선을 절대로 변화시킬 수도 흔들 수도 없으며 조중친선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목숨과 같은 핵과 맞바꾸면서까지 구걸할 우리가 아니다"고 역설했다.
논평은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공식입장을 대변하는 관영매체인 인민일보와 환구시보가 최근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의 국가적 이익에 대한 위협이라며, 북중관계 악화의 책임을 북에 전가하고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데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최근 논평에서 북한이 중국 국경에서 100km도 안 되는 곳에서 핵실험을 하는 것은 동북지역의 안전을 위협하고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배치를 강화하는 구실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의 핵보유를 반대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공동이익이며, 지역에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북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중국 매체들이 "조중관계의 주도권이 자신들의 손에 쥐어져 있으며, 우리가 중국과의 군사적 대립을 바라지 않는다면 '장기간의 고립과 또 다른 국가안보의 길' 사이에서, 중조 친선과 핵포기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극히 도전적인 망발도 서슴치 않았다"면서 "이것은 주권국가로서의 우리 공화국의 자주적이며 합법적인 권리와 존엄, 최고 이익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며 친선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선량한 이웃나라에 대한 노골적인 위협"이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자신들과 전혀 상관도 없는 우리의 핵문제에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 못지 않게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천만부당한 구실을 들어 피로써 개척되고 연대와 세기를 이어 공고발전되어온 조중관계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있는데 대하여 격분을 금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중국 일부에서 제기하는 동북3성의 '핵실험 피해'에 대해서는 "5차에 걸친 우리의 핵시험은 철저한 안전담보하에 진행되었으며, 핵시험장 가까이에 살고 있는 우리 주민들도 핵시험 이후 아무런 피해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 미국이 핵물질 포집장비를 동원해 관찰했지만 크세논을 비롯한 극미량의 방사능 물질을 포집하지 못했다는 것을 중국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자주 거론하는 '국가적 이익의 침해'에 대해서는 중국이 북한의 사회주의 제도를 허물려고 하는 남한 당국과 외교관계를 체결하고 순수한 경제교류의 테두리를 벗어나 정치·군사적 관계로까지 심화시키면서 동북3성은 물론 중국 전역을 '반공화국 전초기지'로 전락시킨 신의없고 배신적인 행동으로 북한의 전략적 이익이 침해당해왔다고 오히려 반박했다.
통신은 중국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2015년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 초청, 천안문광장 주석단에 오르게 한 일에 대해 "비열한 짓"이라고 규정하는 등 한중관계 심화에 대해서도 비난을 퍼부었다.
북한 핵보유로 인해 동북아 정세가 긴장되고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배치를 강화하는 구실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미국의 아태 지배전략은 우리(북)가 핵을 가지기 훨씬 이전부터 가동되었으며 오래전부터 그 기본목표는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면서 70년이나 미국과 1선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북에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라며 핀잔하기도 했다.
나아가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사드 배치를 막아보겠다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불법무도한 대조선 제재결의 채택에 손을 들어주고 동북3성의 경제적 피해까지 감수해가며 우리에 대한 제재에 나섰지만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온갖 비난을 다 들으면서 미국에 양보하고 아부했지만 남조선에는 중국을 겨냥한 비수인 사드가 한밤중에 기습배치되어 참으로 '어리석은 거인'을 비웃고 있다"고 비꼬았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전략적 가치는 날로 상승하고 있으며, 핵강국의 전열에 당당히 들어선 평양으로 향하는 길은 온 세계에 뻗어있다"면서 "중국은 더 이상 무모하게 우리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어 "이는 북한의 권리와 존엄, 최고 이익에 대한 '엄중한 침해'라며 "피로써 개척되고 연대와 세기를 이어 공고 발전되어 온 조중관계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있는 데 대하여 격분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논평에서 "이미 최강의 핵보유국이 된 우리에게 있어서 선택의 길은 여러 갈래"라며 중국의 대북제재가 지속될 경우 러시아 등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북한 정권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매체가 동맹국인 중국을 직접 거론하고, 북중관계의 '근본'까지 언급하며 이처럼 비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다만 북한 외무성 성명 등 당국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김철'이라는 개인의 논평 형식을 빌린 것은 중국의 체면과 양국관계를 고려한 수위 조절로 분석된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